큰맘 먹고 들인 캄포나무 엔드그레인 도마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도마 욕심이 생겼다. 평소에 그냥 대형마트에서 산 플라스틱 도마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었는데, 칼질할 때 나는 텅텅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리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큰맘 먹고 검색을 하다가 소위 말하는 ‘엔드그레인 도마’를 하나 주문했다. 가격은 대략 15만 원 정도였는데, 캄포나무로 만들었다고 해서 향도 좋고 칼날 보호에도 탁월하다는 말에 홀린 듯 결제했다. 받자마자 물에 씻어서 건조대에 올려두는데, 확실히 무게감부터 다르고 원목 특유의 무늬가 예뻐서 괜히 요리할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때는 이걸 관리하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전혀 몰랐다. 그냥 예쁘니까 다 용서될 줄 알았지.
칼질할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미안함
막상 도마를 깔고 요리를 시작했는데 첫 칼질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새 도마니까 흠집이 나는 게 당연한 건데, 막상 예쁜 무늬 위에 칼자국이 슥 남으니까 ‘아, 이걸 계속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전에 쓰던 플라스틱 밧드나 저렴한 도마들은 그냥 막 썼는데, 이건 나무라 그런지 칼이 들어가는 느낌 자체가 아예 달랐다. 푹신하게 칼날을 받아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만큼 칼자국이 깊게 패는 게 눈에 바로 들어오니까 요리하는 내내 도마 걱정부터 하게 된다. 15만 원이나 줬는데 이렇게 금방 낡아버리면 어떡하나 싶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칼을 놀리게 되더라. 이게 도마를 쓰는 건지 도마를 모시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건조와 오일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진짜 문제는 사용 후였다. 플라스틱 도마는 설거지하고 대충 세워두면 끝이었는데, 이건 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설거지 후 바로 마른 행주로 닦아내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세워서 말려야 하는데, 습한 날에는 도마가 뒤틀릴까 봐 걱정돼서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기도 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전용 오일을 발라줘야 나무가 갈라지지 않는단다. 오일 가격도 2만 원 가까이 하길래 같이 샀는데, 바르고 나서 하루 종일 말려야 하니 사실상 주말에는 도마 하나를 온전히 말리는 데 시간을 다 쓴다. 예전엔 주방에 조리기구세트나 스텐국자 하나 대충 던져두고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도마 하나 때문에 주방 위생 관념이 강제적으로 높아진 기분이다.
굳이 이걸 왜 샀을까 싶은 순간들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그냥 예전에 쓰던 저렴한 도마를 꺼내고 싶다. 특히 김치라도 썰려고 하면 엔드그레인 도마는 색이 밸까 봐 또 식겁한다. 도마 위에 종이 호일을 깔고 칼질을 할까 고민도 해봤는데, 그렇게 할 거면 왜 나무 도마를 샀나 싶어 그냥 둔다. 요즘은 하향식 로스타가 설치된 식당에서 고기를 먹을 때도 자꾸 저 집 도마는 어떻게 관리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만 든다. 사실 15만 원짜리나 5천 원짜리나 요리 결과물에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닌데, 왜 나는 이 불편함을 사서 고생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설거지할 때 손목도 은근히 아프다. 그냥 적당히 관리하기 편한 게 최고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몸소 깨닫고 있다.
여전히 적응 중인 주방 생활
주변에서는 그래도 나무 도마가 위생적이고 좋다고들 한다. 칼자국이 나도 샌딩기로 밀어내면 새것처럼 쓸 수 있다는데, 그 샌딩기까지 사야 하나 싶어지면 또 머리가 복잡해진다. 당분간은 오일을 듬뿍 먹이면서 애지중지 써보겠지만, 다음번에 도마를 새로 살 기회가 온다면 아마 무조건 관리가 편한 소재를 찾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도마 문제가 아니라 내가 좀 더 단순한 살림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식탁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이 묵직한 나무 덩어리를 보며, ‘그래도 예쁘긴 하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조만간 이 도마가 정말 내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거대한 장식품으로 전락할지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종이 호일을 깔고 칼질하는 건 좋은 생각인데, 나무 종류 때문에 오히려 더 빠르게 망가지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라 정말 공감되네요. 처음엔 멋있어서 좋았는데, 관리하는 게 너무 귀찮아서 결국 다른 도마로 돌아갔거든요.
오일링 때문에 주말 시간 완전 뺏기네. 저 정도 관리하면 그냥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기분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