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에 꽉 찬 미카사 그릇들을 보며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빈티지 소품샵 투어에 정말 진심이었다. 특히 80년대 느낌이 나는 미카사 그릇들이나 알록달록한 패턴이 들어간 접시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 모았다. 처음엔 손님이라도 오면 근사하게 차려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다 짐이더라. 사실 미세하게 금이 간 접시들도 꽤 많은데, 괜히 버리기는 아까워서 찬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기만 하고 있다. 요즘은 그릇 정리에 관한 글들을 볼 때마다 뜨끔하다. 70대 이후 정리해야 할 1순위가 금 간 그릇이라던데, 나는 이미 지금부터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런 낡은 것들이 주는 감성이 좋았는데, 이제는 설거지할 때마다 혹시라도 손을 베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손님 초대용으로 사둔 일회용 접시들
얼마 전 집들이는 아니고, 친구들 너덧 명이 집에 놀러 온다고 해서 급하게 다이소랑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 왔다. 예쁜 그릇을 꺼내서 대접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뒷정리가 너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일회용 종이 용기랑 펄프몰드 접시였다. 예전에는 일회용품 쓰는 게 왠지 모르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요즘은 무림P&P 같은 곳에서 나오는 펄프몰드 제품들이 잘 나와서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하다. 플라스틱 접시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서 집 근처 마트에서 10개들이 한 묶음을 3천 원 정도 주고 샀는데, 꽤 튼튼했다.
펄프몰드와 종이 용기의 미묘한 불편함
그런데 막상 음식을 담아보니 종이 용기 특유의 단점이 확실히 느껴졌다. 국물 있는 요리를 담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바닥이 눅눅해진다. 친구들이랑 이야기 나누다가 뒤늦게 접시를 치우려고 보니 바닥면이 축 처져 있어서 옮기다가 큰일 날 뻔했다. 예전에는 뭣 모르고 일회용 스푼이나 포크까지 전부 세트로 맞춰서 샀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더라. 펄프몰드 접시는 그래도 일반 종이 접시보다는 좀 낫긴 한데, 그래도 너무 오래 두면 안 된다. 그리고 펄프몰드 접시 가격이 개당 따져보면 생각보다 비싸다. 낱개로 사면 손해인 느낌이라 대량으로 쟁여두고 싶은데, 그러면 또 부피가 만만치 않아서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하다.
친환경이라는 말 뒤에 남는 찝찝함
요즘은 재활용 양면 코팅 기술이 들어간 제품도 나온다는데, 내가 쓴 제품이 정확히 그런 사양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겉보기에 펄프 재질이면 재활용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배출하지만, 가끔 이게 정말 제대로 분리수거가 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집에서 쓰는 식기를 매번 깨끗하게 닦아 쓰는 거라는 걸 안다. 제사 때 쓰는 제기나 공기 같은 것도 결국은 씻어서 다시 쓰는 게 당연한 건데, 왜 일상에서는 그게 그렇게 번거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비누 받침대 대신 플라스틱 뚜껑에 노란 고무줄을 감아서 쓰는 살림 팁을 보고 따라 해 봤는데, 그건 또 생각보다 쓸만하더라. 이런 소소한 건 하면서 왜 그릇 씻는 건 그리도 귀찮은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주방 수납
결국 찬장에 박혀있는 낡은 미카사 그릇들은 그대로고, 구석에는 쓰다 남은 펄프몰드 접시들이 쌓여있다. 정리 전문가들은 금이 간 그릇은 당장 버리라고 하지만, 막상 쓰레기봉투에 담으려고 하면 그게 또 쉽지 않다. 이게 정말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물건을 못 버리는 병에 걸린 건지 헷갈린다. 얼마 전에는 펄프몰드 접시를 다시 좀 사둘까 싶어서 인터넷으로 가격을 찾아봤는데, 대량으로 사면 월 1000만 개 생산하는 공장 설비가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보여서 좀 놀랐다. 나는 그저 몇 개 필요한 것뿐인데,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일회용 그릇이 생산되고 있구나 싶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다음번에도 손님들이 온다면 또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펄프몰드를 꺼내 쓰겠지만, 그러고 나서 또 며칠은 그릇 정리 고민을 하면서 지낼 것 같다.

펄프몰드 재질이 이렇게 대량 생산되는 걸 보니, 집에 쌓인 다른 쓰레기도 한 번에 생각해 보게 되네요.
펄프몰드 접시 가격이 비싸다는 점에, 제가 몇 달 전에 비슷한 고민으로 대용량 쟁여두다가 공간 확보 때문에 결국 버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공감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