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마가 예뻐 보여서 덜컥 산 날
사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다. 그저 주방 분위기를 좀 바꿔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동네 근처 골목에 새로 생긴 편집숍인지 공방인지 애매한 곳을 지나다가 눈에 들어온 나무도마 하나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제주목수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브랜드였는데, 나뭇결이 참 곱고 묵직했다. 가격대는 8만 원에서 12만 원 사이였는데, 일반적인 마트 도마 가격을 생각하면 꽤 비쌌지만 그날따라 그게 그렇게 사고 싶더라. 식재료를 올려두기만 해도 플레이팅이 완성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제하고 들고 올 때는 기분이 좋았다. 집 주방 한쪽에 세워두니 확실히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게 막상 쓰기 시작하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귀찮음이 찾아왔다.
매일 씻고 말리는 반복적인 루틴
처음 일주일은 정성껏 관리했다. 쓰고 나면 바로 따뜻한 물로 가볍게 씻어내고,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고,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세워두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다. 아침에 토스트 하나 구워 먹고 나면 도마를 씻어서 말려야 하고, 저녁에 과일이라도 좀 깎아 먹으려고 꺼내면 또 씻어야 한다. 나무니까 물기를 제대로 안 말리면 곰팡이가 생길까 봐 불안해서 씽크볼 근처에 놔두지도 못한다. 냄비뚜껑거치대를 활용해서 어떻게든 세워두려고 애를 써봤는데, 자꾸 쓰러지고 위치가 애매해서 결국은 그냥 조리대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는 게 최선이 되었다. 가끔은 너무 귀찮아서 그냥 코팅후라이팬 닦는 시간보다 도마 관리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비싼 돈 주고 샀으니 버릴 수는 없고.
습기와 틈새의 문제들
한 달쯤 지나니까 나무 도마 끝부분이 살짝 휘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분명히 잘 말린다고 말렸는데도 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나무 재질은 원래 그렇다며 주기적으로 오일링을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오일을 따로 사서 바르고 말리는 과정까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예전에 쓰던 실리콘 도마는 그냥 식기세척기에 넣고 돌리면 그만이었는데, 이건 그럴 수가 없으니까. 가끔 중식칼로 딱딱한 채소를 썰 때마다 도마에 깊은 자국이 남는 걸 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나무 도마가 칼맛이 좋다는 건 알겠는데, 내 마음은 칼자국이 깊어질수록 같이 패이는 기분이다. 캠핑트레이로 쓰려고 했던 원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냥 모셔두는 관상용이 되어가는 것 같다.
도구와 사용자의 간극
가끔은 대전 서구 쪽 골목상점가를 돌다가 발견한 다른 주방용품 가게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저렴하고 막 쓸 수 있는 플라스틱 도마가 차라리 나았을까? 아니면 그냥 적당한 가격의 업소용 고기불판처럼 튼튼하고 손질이 필요 없는 것들이 훨씬 실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도마는 그냥 재료를 써는 도구일 뿐인데, 내가 주객전도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어제는 사케잔 하나 꺼내다가 실수로 나무 도마 위로 떨어뜨렸는데,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도마 위에 작은 찍힘이 생겼다. 그 자국을 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이걸 사포로 밀어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세월의 흔적이라 치고 그냥 써야 하나. 아직도 결론을 못 내렸다.
여전히 모호한 관리의 영역
앞으로 이걸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1년 정도 쓰다가 상태가 영 안 좋아지면 그냥 장식용으로나 쓰든지, 아니면 진짜 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도마를 길들이는 게 살림의 재미라고 하던데, 나한테는 그 재미보다 불편함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래도 가끔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며 혼자 만족할 때면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제는 주방 수납장 정리를 하다가 냄비뚜껑거치대를 치워버렸는데, 이제 도마를 어디에 둬야 할지 더 막막해졌다. 다음에는 무조건 가볍고 식기세척기 사용 가능한 제품으로 사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또 예쁜 나무 도마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살림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정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나만 유독 예민하게 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케잔이 도마에 떨어진 거 보세요! 나무 특유의 향 때문에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
토스트 후 바로 세척하는 게 이렇게 번거로운 줄 몰랐네요. 곰팡이 걱정 때문에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