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칼을 잡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비 욕심이 생겼다. 처음엔 멋모르고 이름만 들어본 풍천도 칼을 덥석 샀는데, 처음에는 정말 잘 들었다. 양파를 썰어도 눈물이 안 날 정도로 날카로웠으니까. 문제는 무뎌진 뒤였다. 하이스강이라더니, 일반 가정용 칼갈이로는 꿈쩍도 안 했다. 그냥 내가 요령이 없나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옥의 칼갈이’라는 별명이 있더라. 괜히 겁 없이 덤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집에서 혼자 칼을 갈아보겠다고 고집 피우던 시절
처음에는 싼 맛에 산 다이소 숫돌 두어 개로 해결해 보려고 했다. 방구석에서 낑낑대며 30분, 1시간을 매달렸는데 칼날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칼날 면만 거칠게 일어나는 것 같아서 불안해졌다. 결국 칼을 살 때 20만 원 중반대였나, 꽤 돈을 들였던 기억이 나는데 관리비를 더 쏟아붓게 생겼다 싶었다. 그때 문득 옆 동네에 있는 칼 연마 전문점 생각이 났다. 한번 맡기면 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 든다던데, 이걸 매번 맡기는 게 맞나 싶어 한참을 망설였다.
슌이나 토지로 같은 다른 칼들을 기웃거리는 마음
결국 유튜브를 켜서 슌 나이프나 토지로 칼을 검색하게 되더라. 다마스커스 무늬가 들어간 칼을 보면 예쁘기도 하고, 사람들이 다들 ‘관리가 쉽다’는 말에 혹한다. 사실 관리가 쉬운 칼이 어디 있겠냐만은, 풍천도의 그 단단함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무른 강재’라도 좋으니 슥슥 갈리는 칼이 간절해졌다. 주변에 사시미를 치는 지인들은 마사히로 같은 브랜드도 많이 쓰던데, 내 손에 딱 맞는 물건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칼갈이 도구만 늘어가는 주방 서랍
지금 주방 서랍을 열어보면 엉망이다. 가죽 스트롭부터 시작해서 세라믹 막대까지, 칼갈이 도구만 서너 개가 굴러다닌다. 그런데도 결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마음이 편하다. 사실 풍천도를 처음 샀을 때, 어떤 학교에서 장인이 만든 칼이라며 학생들에게 선물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좋은 칼인 건 확실한데, 실력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던 모양이다. 누가 선물해 준다고 해도 선뜻 받기 무서울 지경이다.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아직도 해결이 안 된 건, 칼을 전문점에 맡기면 그 특유의 예리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가 갈 때보다는 훨씬 낫지만, 처음 박스에서 꺼냈을 때의 그 날카로움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저녁에도 냉장고 속 고기를 썰다가 툭툭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또 칼갈이를 꺼낼지, 아니면 이번 주말에 시내 나가는 길에 칼 연마점에 들를지 고민이다. 이럴 때면 장비병은 정말 끝이 없구나 싶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칼들을 관리하며 사는지, 가끔은 그게 제일 궁금하다. 어차피 요리라는 게 칼 한 자루에 달린 건 아닌데, 왜 이토록 칼날의 각도에 집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다마스커스 칼에 그렇게 매료난 거 보니까, 디자인만큼 중요할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