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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갈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이거 왜 샀나 싶다

킹숫돌을 사놓고 몇 달째 방치하는 이유

주방 서랍을 열어보면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킹숫돌이 하나 굴러다닌다. 한때는 정말 칼을 완벽하게 관리해서 요리 전문가처럼 살겠다고 야심 차게 샀던 것 같다. 유튜브에서 칼 가는 법을 찾아보고, 쌀뜨물에 담가두었다가 각도를 유지하며 슥슥 문지르는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달랐다. 일단 칼을 가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번거롭다. 싱크대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물을 튀기면서 숫돌질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건지 아니면 노동을 사서 하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무엇보다 내 칼이 싼 건지 비싼 건지조차 이제는 모르겠다. 그냥 어디선가 얻어온 스텐 식도 하나랑, 멋 부린다고 샀던 다마스커스 나이프 하나가 섞여 있는데, 다마스커스 나이프는 처음 몇 번 폼 잡느라 써보고는 관리하기가 너무 까다로워서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매일 손이 가는 건 만 원대에 산 가벼운 과도뿐이다.

주방칼꽂이는 결국 짐이 되나

칼꽂이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원목으로 된 묵직한 칼꽂이를 써봤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나무 틈새에 물기가 맺히고 위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거 제대로 말리기는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결국 5만 원 정도 주고 샀던 그 원목 칼꽂이를 버리고, 지금은 그냥 싱크대 문 안쪽에 붙이는 자석 홀더를 쓰고 있다. 이게 확실히 물기가 덜 맺히고 마음은 편한데, 문제는 칼을 붙였다 뗄 때마다 ‘텅’ 소리가 너무 크게 난다는 점이다. 새벽에 야식이라도 좀 해 먹으려고 하면 칼 소리가 너무 커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차라리 그냥 옛날처럼 서랍에 눕혀놓는 게 나았나 싶기도 하고, 살림이라는 게 참 하면 할수록 정답이 없는 것 같다.

파절이기계와 양배추필러의 몰락

주방 도구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특히 양배추 요리를 좋아해서 파절이기계도 사보고, 양배추 전용 필러도 샀었다. 처음에 양배추를 얇게 썰어낼 때는 정말 신세계였다. ‘이제 돈가스집 샐러드는 안 사 먹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며칠 지나니까 그 필러를 세척하는 게 너무 귀찮아졌다. 채 썰고 남은 양배추 조각들이 필러 틈새에 끼어 있으면 그걸 칫솔로 털어내야 하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그냥 칼로 대충 썰어 먹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절이기계는 아예 상자도 안 뜯고 보관 중이다. 좁은 주방에 수납공간은 한계가 있는데, 이런 도구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부엌이 아니라 무슨 실험실처럼 변해가는 기분이다.

스텐 프라이팬과 계란말이팬의 운명

요즘은 스텐 프라이팬이 대세라고 해서 겁 없이 덜컥 구매했다. 처음엔 예열을 제대로 못 해서 계란후라이를 하나 하면 바닥에 다 눌어붙고, 그걸 닦아내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인덕션을 쓰니까 불 조절도 마음대로 안 되고, 확실히 코팅 팬보다는 손이 많이 간다. 계란말이팬도 마찬가지다. 사각형 모양으로 깔끔하게 말아보겠다고 샀는데, 막상 사각형 팬에 하니까 더 안 말리는 느낌은 뭘까. 결국 다시 코팅이 잘 된 동그란 프라이팬을 꺼내서 쓴다. 내가 굳이 왜 그 고생을 자처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편한 게 최고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피부로 와닿는다.

도구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주방용품이라는 게 본인의 생활 패턴과 맞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멋진 살림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내 공간을 끼워 맞추려 했던 것 같다. 이제는 WIHA 드라이버 같은 공구마냥 칼도 그냥 기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잘 들고, 씻기 편하고, 내 손에 익숙한 것. 비싼 브랜드 칼이나 복잡한 구조의 칼꽂이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다 버리고 제일 단순한 것들만 남겨두고 싶은 마음뿐인데, 막상 또 서랍을 열어보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면서 남겨둔 물건들이 가득하다. 정리를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계속 미루겠다는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저 킹숫돌이나 치워버려야겠다. 싱크대 밑 어딘가에 밀어 넣으면 당분간은 안 보일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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