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옥의 시작은 실리콘 빨대부터였다
얼마 전부터 집에 쌓여있는 일회용 빨대가 영 거슬렸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냥 찬장에서 굴러다니는 게 보기 싫었다고 하는 게 솔직할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나름 친환경이라고 광고하는 실리콘 빨대 세트를 샀다. 25cm 길이의 빨대가 6개 들어있고, 작은 세척 솔까지 한 세트로 묶여서 대략 8,000원 정도 줬던 것 같다. 처음에는 좋았다. 아이스 커피를 마실 때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안 나오니까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딱 일주일 지나니까 슬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실리콘 특유의 미끈거림 때문에 커피 찌꺼기가 안쪽 벽에 자꾸 달라붙는 거다. 동봉된 솔로 닦아내려고 해도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물때가 끼는 건지 안쪽을 보면 매번 찝찝해서 결국엔 그냥 안 쓰고 말지 싶어지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개방형 빨대는 정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이번에는 옆으로 쫙 갈라지는 이른바 ‘개방형 빨대’를 찾아봤다. 광고에서는 그냥 손으로 슥 열어서 닦으면 끝이라고 했다. 그래, 이거라면 매번 솔을 집어넣고 씨름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었다. 가격은 일반 실리콘보다 조금 더 비싼 만 원 초반대였는데, 처음에는 신세계였다. 정말로 옆면이 지퍼처럼 열리니까 안쪽을 눈으로 확인하고 닦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속 시원하던지. 하지만 이것도 한 달을 못 넘겼다. 매번 씻을 때마다 빨대를 열고 닫는 게 생각보다 번거롭다. 바쁜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 이걸 하나하나 분리해서 닦고, 물기 말리고 다시 닫아서 보관하는 과정이 반복되니 이게 환경을 위한 건지 내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25cm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
우리 집 찬장에는 이제 짧은 빨대, 긴 빨대, 그리고 세척이 용이하다는 개방형 빨대까지 종류별로 다 모여 있다. 사실 그냥 컵에 입 대고 마시면 되는 건데, 왜 굳이 이런 걸 샀나 싶을 때가 많다. 특히 얼마 전에 갔던 스터디카페에서는 빨대 소리가 시끄럽다고 아예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어서, 내가 굳이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까지 써야 하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25cm짜리 빨대는 텀블러 높이에는 딱 맞는데, 이게 너무 길어서 건조대에 세워두면 자꾸 쓰러진다. 좁은 주방에 빨대 전용 건조대까지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어제는 설거지하다가 빨대 하나가 배수구 쪽으로 굴러 떨어져서 다시 씻느라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은 결국 그냥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남편은 그냥 컵째 들고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다며 이제는 빨대 근처에도 안 온다. 나 혼자서 꾸역꾸역 커피 마실 때마다 빨대를 꺼내 쓰는 게 무슨 고집인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실리콘 조리도구 세트를 한꺼번에 장만했을 때도 느꼈지만, 주방 도구는 결국 손이 많이 가면 안 쓰게 된다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싱크대 한구석에는 어제 쓴 빨대가 널브러져 있다.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가서 이걸 다시 열어서 닦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찬장 깊숙한 곳에 박아두고 다시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 거창한 대단한 결심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내 일상의 불편함만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며칠 뒤면 저 빨대들은 서랍 속에서 잊혀지겠지.
여전히 남는 찝찝함과 질문들
완벽하게 편한 도구는 애초에 없는 걸까. 카페에 가면 키오스크에서 빨대 옵션을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마저도 가끔은 귀찮게 느껴진다. 굳이 필요 없는데 습관적으로 ‘제공’을 누르는 건 아닌지, 아니면 ‘미제공’을 눌러놓고 매장에서 일회용 빨대를 따로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게 더 편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가 모순적이다. 결국 환경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내 앞의 설거지 양을 줄이는 게 더 급선무인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컵 세척은 뒷전이고 일단 빨대부터 말리고 있는 나를 보면 웃음이 난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나도 비슷한 경험 있는데, 작은 부분에 신경 쓰느라 오히려 시간 낭비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 주방에 흩어진 도구들 보면 씁쓸하더라구요.
짧은 빨대들도 불편했는데, 이렇게 열고 닫는 게 또 다른 문제네요. 특히 아침에 바쁜 시간에 텀블러에 넣고 닦는 게 쉽지 않겠어요.
이 빨대, 가지고 놀기 바빴던 텀블러 높이에 맞춰놓고 결국 설거지 늘어짐… 컵에 그냥 마시는 게 답이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