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냄비를 샀을 때의 그 막막함
결혼하고 나서 제대로 된 스텐냄비 세트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뒤지다가 쿠비녹스 냄비랑 핀일로 냄비세트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독일 감성이 조금 섞인 브랜드로 결정하고 배송을 받았는데, 상자를 열자마자 든 생각은 ‘이걸 도대체 언제 다 닦지?’였다. 예전에 자취할 때 풍년 스텐냄비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도 연마제 때문에 식용유를 키친타월에 묻혀서 한참을 문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은 무연마 특수 공법으로 나오는 냄비들도 있다던데, 내가 산 건 그런 홍보 문구가 없었으니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검은 기름때가 묻어 나올 때의 당혹감
주방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식용유를 듬뿍 뿌렸다. 처음 한두 번은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 같아서 ‘아, 이번 제품은 양품인가 보다’ 싶었는데, 뚜껑 테두리 부분을 힘주어 닦는 순간 키친타월이 시커멓게 변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연마제인가 싶어 갑자기 등줄기에 땀이 났다. 5만 원대에서 10만 원대 사이의 금액을 주고 산 냄비인데,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하나 싶어서 현타가 왔다. 인덕션 편수 냄비 하나만 닦았는데도 벌써 손목이 욱신거렸다. 업소용 들통 같은 거 큰 거 샀으면 진짜 병원 갈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탄산소다로 마무리를 하려다 겪은 시행착오
연마제를 대충 다 닦아내고 나니 이제는 세척이 문제였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세면대나 싱크대 청소할 때 썼던 과탄산소다를 좀 활용해볼까 했다. 따뜻한 물에 녹여서 냄비를 담가두면 소독도 되고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근데 이게 문제였다. 알루미늄이 섞인 냄비라면 과탄산소다 때문에 변색이 된다는데, 내 냄비는 스텐 304 재질이니까 괜찮겠지 싶어 무작정 담가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바닥 쪽에 얼룩이 약간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왠지 광택이 죽은 것 같아서 괜히 그랬나 싶어 마음이 찝찝했다. 그냥 주방 세제로만 닦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스텐 냄비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생각
사실 곰솥이나 편수 냄비나 모양만 다르지 결국은 다 불 위에 올리는 건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다. 예전에 쓰던 저렴한 냄비들이랑 이번에 큰맘 먹고 바꾼 냄비가 열전도율 차이는 있겠지만, 솔직히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큰 차이를 모르겠다. 인덕션에서 물이 빨리 끓는 건 확실한데, 그게 냄비가 좋아서인지 인덕션 화력이 좋아서인지도 헷갈린다. 결국은 관리의 영역인데, 스텐 관리가 이렇게 귀찮을 줄 알았으면 그냥 코팅 팬을 더 자주 바꾸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냄비 하나를 너무 세게 문질러서 손잡이 쪽이 미세하게 긁힌 것 같아 속이 상했다.
여전히 남은 찝찝함과 주방의 모습
오늘 저녁에는 새로 닦은 냄비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연마제를 닦아내느라 고생한 흔적은 주방에 널브러진 키친타월 뭉치들로 남아있다. 사실 완벽하게 다 제거된 건지, 아니면 내가 대충 닦고 그냥 쓰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 어떤 사람들은 몇 번을 삶아내야 안심이 된다고 하던데, 나는 딱 세 번 닦고 포기했다. 사람이 죽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하며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렸다. 스텐 냄비의 반짝거림은 예쁘지만, 그 반짝임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이 과연 효율적인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설거지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