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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볼 하나 사려다 주방 전체를 뒤엎어버렸다

그릇 욕심이 불러온 사소한 재앙

얼마 전이었다. 왜 갑자기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예쁜 도자기 볼에 샐러드를 담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쓰던 스테인리스 믹싱 볼은 너무 공업용 같기도 하고, 투박하니까 말이다. 근처 리빙 편집숍에 들러 4만 원 가까이 주고 큼직한 도자기 볼 하나를 샀다. 집에 가져와 보니 기존에 쓰던 도루코 프라이팬 옆에 두었을 때 색감이 너무 안 어울리는 거다. 그게 시작이었다. 멀쩡히 잘 쓰던 실리콘 수저 세트가 왠지 촌스러워 보이고, 가스레인지 옆에 굴러다니던 냄비 뚜껑 거치대는 왜 그렇게 먼지가 쌓여 있는지.

버려야 할 것과 굳이 남겨둔 것들

주방을 갈아엎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싱크대 하부장을 열었는데,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국산 실리콘 조리도구가 쏟아져 나왔다. 끝부분이 살짝 변색된 스푼들을 보는데, 갑자기 위생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조리도구에서 화학 성분이 나올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지. 찝찝한 마음에 실리콘 스푼 서너 개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고기 그릴 옆에 둔 주물 후라이팬이 눈에 띄었다. 이건 또 길들이기(시즈닝)가 귀찮아서 거의 안 쓰고 있었는데, 막상 버리려니 가격이 아까워서 일단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이 모순적인 마음이 참 스스로도 웃기다.

식중독 기사를 보고 든 불안감

정리하다가 우연히 뉴스 기사를 하나 봤다. 닭을 씻을 때 튀는 물방울이 조리도구 전체에 균을 퍼뜨린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오싹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도마랑 칼은 괜찮은가?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6월이 코앞인데, 나는 너무 안일하게 살림을 했던 것 같다. 급하게 냄비를 꺼내 물을 끓이고, 플라스틱으로 된 조리도구를 넣으려다 말았다. 괜히 잘못 녹였다가 냄비만 버릴 것 같아서 그냥 흐르는 물에 박박 씻는 것으로 타협했다. 마음은 찝찝한데 행동은 대충인 셈이다.

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정리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무거운 도자기 볼이 싱크대 상판에서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이 튀는 소리가 들리는데, 순간 뇌리를 스친 게 ‘깨진 유리 조각 치울 땐 청소기 쓰지 마라’는 경고였다. 맨손으로 줍다가 베일 뻔해서 급하게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고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청소기를 돌리면 미세 파편이 안으로 다 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그냥 청소기로 밀어버리고 싶은 유혹이 엄청났다. 그래도 참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빗자루로 쓸어내는 내 모습이 참 처량하더라.

여전히 정리가 안 된 주방 상태

결국 도자기 볼 하나 사려다 주방 정리에 꼬박 반나절을 썼다. 불고기 불판은 닦지도 못했고, 아직도 싱크대 구석에는 정체 모를 조리도구들이 뒤섞여 있다. 예쁜 주방을 꿈꿨는데, 현실은 파편 치운다고 고무장갑 끼고 땀 흘리는 모습뿐이다. 새로 산 도자기 볼은 구경도 제대로 못 해보고 잔해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다음번엔 그냥 원래 쓰던 스테인리스 믹싱 볼을 그대로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살림에 욕심을 내면 몸만 고생이라는 생각을, 깨진 파편 조각들을 정리하면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냉장고 뒤편에 유리 가루가 남아있을 것 같아서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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