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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팬 하나 샀다가 설거지랑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덜컥 사버린 무거운 무쇠팬의 시작

얼마 전에 판교 데이빗앤룰스 같은 곳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데, 직원분이 무쇠팬에 고기를 올려서 가져오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특유의 겉면 크러스트라고 하나, 바삭하게 익은 그 느낌이 집에서도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고민 끝에 하나 주문했다. 가격은 대략 8만 원 정도였나, 평소 쓰던 테팔프라이팬이나 해피콜프라이팬 같은 코팅 제품들에 비하면 꽤 묵직하고 비싼 편이었다. 처음 배송받았을 때 그 묵직한 무게감에 ‘이걸 내가 매일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잠깐 들긴 했지만, 일단 고기를 구워보겠다는 의지가 앞섰다. 택배 박스를 뜯자마자 느껴지는 그 차갑고 투박한 질감이 왠지 요리를 좀 더 진지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깐의 착각이었다.

시즈닝이라는 굴레에 갇히다

무쇠팬은 그냥 씻어서 바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검색해보고 알게 됐다. 시즈닝이라는 작업이 필수라는데, 이게 무슨 연금술도 아니고 생각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팬을 강한 불에 달구고 기름을 바르고, 다시 말리고,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주방에서 가스레인지 불을 켜놓고 20분 가까이 멍하니 서 있으려니 ‘내가 지금 스테이크 먹자고 뭘 하는 거지’ 싶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인내와 반복이 중요하다고 적혀 있는데, 퇴근하고 돌아와서 밥 해 먹기도 바쁜데 매번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기름을 너무 많이 발랐는지 끈적거려서 다시 닦아내느라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얇게 바르기’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의외로 불편한 세척과 관리법

요리를 하고 나면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코팅 팬들은 그냥 설거지하고 건조대에 두면 끝인데, 이건 무조건 뜨거운 물에 솔로 닦아야 한다. 세제를 쓰면 안 된다는 말에 처음에는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나 고기 냄새가 배어있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물기를 제대로 안 말리면 바로 녹이 슬 것 같아서 드라이기로 말리기까지 했다. 식사 후에 다들 거실에서 TV 보고 있는데 나 혼자 주방에서 무쇠팬과 씨름하고 있는 꼴을 보니 조금 처량했다. 고등어 두부구이를 한번 해 먹고 나니 냄새가 팬에 배어서 한동안 다른 요리를 할 때도 묘하게 고등어 향이 나는 것 같아 곤욕이었다. 결국 이럴 바엔 그냥 연기 안 나는 불판을 하나 더 살까 고민하게 되더라.

업소용 웍의 실체를 알아버렸다

며칠 전에는 식당에 가서 보니까 업소용 웍이나 무쇠팬을 사용하는 걸 유심히 보게 됐다. 거기는 화력이 워낙 좋으니 시즈닝이고 뭐고 상관없이 막 굴려도 되는 것 같더라. 내가 집에서 낑낑대며 닦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관리 환경이다. 역시 가전이나 도구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26cm 궁중팬 하나 들고 이 난리인데, 큰 무쇠 솥을 쓰는 식당들은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무쇠팬으로 요리하면 확실히 맛은 다르다. 고기 표면의 그 질감은 코팅 팬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여전히 적응 중인 나의 식탁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와서 무쇠팬을 꺼냈다. 엊그제 시즈닝을 대충 해뒀더니 살짝 군데군데 얼룩이 진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다시 뜨거운 물로 닦고 기름을 아주 얇게 발라두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 팬을 보고 ‘내가 왜 이걸 샀지’라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스테이크 150g에 7만 원씩 하는 식당의 맛을 집에서 재현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제는 팬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일종의 숙제처럼 느껴진다. 조금 불편하지만, 가끔씩 완벽하게 구워진 고기를 만날 때 느끼는 그 쾌감 때문에 아직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요리에 도전해볼 생각인데, 이번에는 제발 들러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리 안 돼서 녹이라도 슬어버리면 그냥 방출해버려야 하나, 아니면 이 불편함도 그냥 무쇠팬을 쓰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직 답을 못 내렸다.

“무쇠팬 하나 샀다가 설거지랑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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