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위 ‘도마 만들기’ 키트를 사서 직접 원목 도마를 제작해보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 또한 작년에 꽤 비싼 티크 나무 도마를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큰맘 먹고 재료를 주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중에서 파는 완제품이 10만 원을 훌쩍 넘어가니, ‘이 정도 재료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순진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죠.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현실은 광고 문구와는 꽤 다르더군요.
기대와 현실 사이, 사포질의 늪
많은 분이 도마 만들기를 단순히 예쁜 모양을 따고 오일을 바르는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80% 이상의 시간이 지루한 사포질로 채워집니다. 저도 처음에는 쓱쓱 문지르면 금방 매끄러워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무의 결을 살리면서 거친 표면을 잡으려면 80방부터 400방, 600방까지 단계별로 사포질을 거쳐야 합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after 사진 속의 매끈한 도마는 누군가의 땀방울이 아니라 3시간 이상의 반복적인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서 도마를 방치하고, 결국엔 그냥 새로 사는 게 나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하죠.
재료 선택의 딜레마: 티크냐 아카시아냐
나무 도마를 만들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나무의 종류입니다. 티크 원목 도마는 내구성이 좋고 유분기가 많아 물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대가 높고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반면 아카시아는 비교적 저렴해서 초보자가 연습용으로 쓰기 좋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뒤틀림이 심합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초보자가 실수합니다. 무조건 비싸고 좋은 나무를 써야 결과물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초보라면 차라리 저렴한 키트로 나무의 성질을 파악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저도 처음에 비싼 티크를 썼다가 사포질 도중 결을 잘못 읽어 나무가 뜯겨 나가는 바람에 5만 원어치 재료를 고철로 만든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원목은 관리가 생명이라 어떤 나무를 써도 1년 정도 쓰다 보면 기스가 나고 색이 변하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도마 만들기, 정답은 없다
주변에서는 도마를 직접 만들면 정성이 들어가서 더 애착이 간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용성만 따지자면 3~5만 원대 완제품을 사는 것이 시간 대비 효율 면에서 훨씬 압도적입니다. 도마를 직접 만드는 과정은 요리 도구를 만드는 시간이라기보다, 나무를 다루는 ‘노동력’을 지불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4시간 정도의 노동과 사포 가루를 뒤집어쓰는 과정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만의 것’을 갖고 싶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예쁜 도마를 주방에 두고 싶다면, 굳이 고생하지 말고 잘 만들어진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나무의 내구성이 약해 6개월 만에 갈라짐이 발생했을 때 느꼈던 허탈함은, 아마 직접 만들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영역일 겁니다.
마치며: 누구를 위한 일인가
이 글은 지금 당장 나무 도마를 만들어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입니다. 꼼꼼한 성격에 DIY를 즐기고, 내 손으로 뭔가를 완성했을 때 큰 희열을 느끼는 분이라면 도마 만들기는 꽤 좋은 취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당장 쓸 쓸만한 도마가 필요하거나, 정교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이 과정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도 마음이 든다면, 가장 먼저 저렴한 입문용 키트로 나무의 결을 읽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세요. 완벽한 도마를 만들겠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것, 그게 바로 실패하지 않는 도마 만들기의 핵심입니다. 다만, 집에서 하는 사포질은 생각보다 먼지가 많이 나니 반드시 환기가 잘 되는 베란다나 야외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실내에서 했다간 하루 종일 청소기만 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