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당근 채 썰다가 손가락 다칠 뻔하고 싱크대 구석에 넣어둔 이야기

당근라페 유행에 휩쓸려 결제까지 해버린 과정

요즘 건강식이라고 해서 당근라페나 감자채전 같은 걸 자주 해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SNS에서 다들 손쉽게 당근을 얇게 슥슥 밀어내는 영상을 보고 홀린 듯이 검색을 시작했다. 보통 다이소에서 파는 2천원짜리 플라스틱 채칼을 많이 쓰는데, 그건 왠지 금방 날이 무뎌질 것 같고 플라스틱 틈새에 주황색 당근 물이 드는 게 싫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독일제 트라이앵글 줄리앤커터라는 제품이 내구성이 좋다고 블로그나 카페에서 다들 칭찬하길래 관심이 갔다. 마침 자주 이용하는 쇼핑몰에서 3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팔고 있길래 배송비 아까운 생각에 다른 주방 도구 몇 개와 함께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다. 이때만 해도 샐러드나 채소 요리를 엄청 자주 해 먹을 줄 알았다.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어색한 그립감과 힘 조절 실패

택배를 뜯고 마주한 쇠붙이는 생각보다 묵직하고 차가웠다. 전체가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어서 물때도 안 끼고 위생적으로 오래 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손으로 쥐어보니 손잡이 부분이 얇고 둥글어서 내 손에는 착 감기는 느낌이 덜했다. 당장 당근 하나를 씻어서 도마 위에 올려두고 칼날을 대봤다. 영상에서는 그냥 슥 가볍게 내리면 얇은 채가 국수처럼 쏟아져 나오던데, 내가 하니까 턱턱 걸리는 느낌이 먼저 났다. 힘을 너무 주면 당근에 날이 깊게 박혀서 꼼짝도 안 하고, 그렇다고 힘을 너무 빼면 껍질만 찔끔 긁히는 수준이었다. 손목에 잔뜩 힘을 주고 몇 번 밀다 보니 팔뚝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부드럽게 썰리지 않아서 처음부터 약간 당황했다.

얇고 일정한 채는 나오는데 사방으로 튀는 야채 조각들

몇 번 긁으면서 나름대로 긁는 각도와 힘 조절 요령이 생기니까 제법 얇고 일정한 채가 썰려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일반 식칼로 하나하나 얇게 썰어서 다시 채치는 것보다 두께가 일정하게 나오는 건 신기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깔끔하게 도마 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채가 썰리면서 얇은 당근 조각들이 양옆으로 튀었고, 어떤 건 칼날 사이에 껴서 덜렁거렸다. 당근 한 개를 다 썰고 나니까 도마 주변뿐만 아니라 싱크대 바닥까지 주황색 잔해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게다가 당근이 점점 작아질수록 손가락이 칼날에 닿을까 봐 극도로 불안해졌다. 다들 안전홀더를 쓰라고 하던데 귀찮아서 그냥 하다가 결국 당근 끝부분 3센티미터 정도는 채칼로 밀지 못하고 칼로 대충 썰거나 그냥 먹어버렸다.

물로 대충 헹구기엔 너무 촘촘하고 무서운 칼날 구조

진짜 번거로운 일은 요리가 끝난 다음에 세척할 때 시작되었다. 이 줄리앤커터는 톱니처럼 생긴 미세한 칼날들이 촘촘하게 양면으로 박혀 있는 구조다. 요리가 끝나고 물로 대충 슥 헹궈서 털어내려고 보니까, 톱니날 틈새마다 얇은 당근 섬유질과 찌꺼기들이 잔뜩 끼어 있었다. 흐르는 물에 수압을 세게 해도 빠지지 않아서 결국 안 쓰는 칫솔을 가져와 세제를 묻혀 닦아내야 했다. 칫솔질을 하다가 손가락 끝이 톱니날에 살짝 스쳤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조심조심 찌꺼기를 다 빼내고 건조대에 올려두고 나니, 당근 채 써는 데 걸린 시간보다 세척하고 칼날 틈새 신경 쓴 시간이 더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시 식칼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애매한 상황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비싼 채칼은 싱크대 서랍 안쪽 구석에 조용히 누워 있다. 어쩌다 당근라페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쟁여둘 때나 가끔 꺼내 쓰지, 평소에 국에 넣을 감자 한두 개 채 썰 때는 그냥 예전처럼 식칼을 꺼내 들게 된다. 칼질이 서툴러서 채 두께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차라리 그게 씻기 편하고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 칼날 틈새 닦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커서 손이 잘 안 간다. 도구를 사면 요리가 엄청 편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도 서랍을 열 때마다 저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쇳덩어리를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살짝 들면서도 선뜻 꺼내 쓰기가 망설여진다.

“당근 채 썰다가 손가락 다칠 뻔하고 싱크대 구석에 넣어둔 이야기”에 대한 2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