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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나 새로 샀을 뿐인데 괜히 이것저것 썰어보고 싶어졌다

벼르고 벼르다 결국 세키마고로쿠를 샀다

한동안 주방에 있는 칼들이 전부 다 무뎌져서 고생을 좀 했다. 양파 하나를 썰어도 깔끔하게 단면이 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에 칼이 걸려서 뭉개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미루고 미뤘는지 모르겠다. 사실 칼을 간다는 게 말이 쉽지, 숫돌을 따로 사서 닦고 각도를 맞추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지 않나. 집에 있는 싸구려 막칼들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고, 그냥 하나 괜찮은 걸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하도 세키마고로쿠를 언급하길래, 속는 셈 치고 하나 골랐다. 가격대는 6만 원대였나, 7만 원 가까이 줬던 것 같다. 칼 하나에 이 정도 돈을 쓰는 게 맞나 싶었지만, 매일 요리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싶어서 결제했다.

택배 박스를 뜯었을 때의 묘한 긴장감

택배가 도착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포장이 생각보다 간소했다. 사실 과대 포장보다는 이게 낫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 가격이면 조금 더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기대했나 싶기도 하고. 칼을 처음 꺼내서 손에 쥐어봤는데, 생각보다 가벼워서 놀랐다. 예전에 쓰던 마트표 프라이팬 세트에 끼워져 있던 칼들은 묵직한 맛에 썼던 것 같은데, 이건 날렵하고 가벼웠다. 왠지 모르게 손이 덜 피로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탁 위에 있던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깎아봤는데, 그냥 힘을 들이지 않아도 슥 하고 들어간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좋은 칼을 쓰는구나 싶었다. 물론 이런 느낌이 며칠이나 갈지 모르겠다. 금방 또 무뎌지면 그때는 또 숫돌을 사야 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든다.

칼질을 하다가 갑자기 든 쓸데없는 생각

칼을 새로 사고 나니까 괜히 파를 썰어도 더 얇게 썰고 싶어지고, 무채도 기계처럼 일정하게 썰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무채 썰겠다고 멀티채칼 같은 걸 샀다가, 오히려 뒷정리가 귀찮아서 찬장에 박아두고 안 쓴 기억이 난다. 채칼로 썰면 손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플라스틱 사이에 낀 무 조각들 씻어내는 게 얼마나 일인데. 차라리 이렇게 잘 드는 칼로 직접 썰어버리는 게 속 편하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근데 또 10분 넘게 무를 썰고 있으니까 손목이 아파오더라. 역시 장비가 좋아도 내 손목 컨디션이 안 따라주면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살림이라는 게 참,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불편함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수세미로 칼을 닦을 때의 조심스러움

새 칼을 샀으니 관리도 잘해야겠지. 그런데 칼을 씻을 때마다 좀 긴장된다. 예전에 친구가 수세미로 칼날을 닦다가 손을 베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더 그렇다. 집에 있는 텀블러 세척 솔 같은 걸로 틈새를 닦으려고 노력하는데, 가끔은 그냥 대충 헹구고 말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6만 원짜리 칼인데 싶어서 정성껏 닦긴 하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설거지통에 칼을 던져두면 나중에 찾을 때 위험하기도 하고, 칼날이 상할 것 같아서 바로바로 닦아서 걸어두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 생각보다 귀찮다. 이게 살림의 묘미인지, 아니면 그냥 내 성격의 문제인지 가끔 헷갈린다.

앞으로 더 써봐야 알 것 같은 기분

솔직히 지금 당장은 만족스럽다. 일단 양파를 썰 때 눈이 덜 매운 것 같기도 하고, 단면이 깨끗하니까 요리할 맛이 좀 난다. 그런데 이걸로 1년을 버틸 수 있을지, 아니면 반년 뒤에 다시 무뎌져서 칼을 가는 방법을 검색하고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칼은 정기적으로 갈아줘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주방 한구석에 있는 프라이팬 세트처럼 언젠가는 이 칼도 무뎌져서 서랍 구석으로 밀려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씁쓸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 저녁에 뭘 해 먹을지 고민하게 되는 건 좋은 현상인 것 같다. 거창한 요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식재료 손질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당분간 없지 않을까 싶다. 그저 오늘 썰어놓은 채소들이 며칠은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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