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물건
주방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낡은 짤순이를 다시 꺼냈다. 사실 꽤 오래전, 2만 원인가 3만 원 정도 주고 샀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찬밥 신세였다. 처음에는 나물 물기 짜는 게 너무 귀찮아서 샀던 건데, 이게 은근히 씻는 게 더 일이다. 채반이랑 통이랑 뚜껑까지 분해해서 설거지하고 말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면보에 넣고 힘 좀 주는 게 나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요즘 들어 오이지무침을 자주 해 먹게 되면서 다시 이 녀석의 존재가 떠올랐다. 어릴 때 엄마가 오이지 물기를 짜느라 손목이 빨개지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손으로만 짜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
손맛이냐 효율이냐의 미묘한 경계
사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짤순이를 보면 질색하신다. 손으로 꾹꾹 눌러 짜야 양념이 겉돌지 않고 쏙 배어든다나. 오이지를 무칠 때 물기가 제대로 안 빠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금방 꼬들함이 사라지고 밍밍해지는데, 엄마 말씀은 손의 압력이 짤순이의 그 균일한 압력보다 더 정교하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닌데, 막상 내가 직접 무쳐보면 손이 아파서 제대로 짜질 못한다. 특히 파절이용으로 파를 썰어두고 물기를 뺄 때, 이 미니 짤순이는 정말 유용하다. 얼마 전엔 신영파절기라는 걸 써서 파를 얇게 썰어봤는데, 확실히 칼로 하는 것보다 양이 많아지니까 물기를 빼는 게 필수였다. 기계가 해준 파채는 부피가 커서 손으로 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더라.
짤순이 사용의 묘한 불편함
한번 사용하고 나면 짤순이 내부 메쉬망에 끼인 잔여물을 닦아내는 게 진짜 일이다. 특히 김치 국물을 짜고 나면 고춧가루가 망 사이사이에 박혀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최근에 글라스락에서 나온 그릭요거트 메이커 같은 걸 보니 0.1mm 미세 메쉬 필터라고 광고하던데, 그런 건 대체 어떻게 닦아내는 건지 궁금할 정도다. 나는 그냥 대충 물에 담가두었다가 나중에 칫솔로 벅벅 문지르는 게 전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짤순이를 쓰는 것보다 그냥 채반에 받쳐두고 한참 기다리는 쪽을 택하게 됐다. 바쁠 땐 짤순이가 효자인데, 여유가 있으면 그냥 채반에 두고 잊어버리는 게 더 속 편하다.
수영복 건조용으로도 쓴다던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다 보니 누군가는 이 짤순이를 휴가철 계곡 평상 같은 데서 수영복 물기 짜는 용도로도 쓴다고 하더라.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나 나물 물기 빼는 용도로만 생각했는데, 수영복이라니. 생각해보면 원리야 똑같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음식이 닿는 도구인데 그렇게 범용적으로 써도 되는 건지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오이지 물기를 짜기 위해 이 불편한 도구를 꺼내 들었다. 짤순이를 돌릴 때 나는 그 삐걱거리는 플라스틱 소리가 정겹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사서 고생하는 기계라는 생각도 든다.
무쳐놓고 보니 고민은 여전하다
다 짜고 나서 무쳐놓은 오이지를 보니 확실히 물기가 덜해 꼬들꼬들하긴 하다. 손으로 짤 때는 물기가 중간중간 남아 있어서 양념이 자꾸 흥건해졌는데, 확실히 짤순이가 압력을 제대로 가하긴 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거지통에 던져진 짤순이 부품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똑같다. 내일 또 이걸 꺼낼까? 그냥 손목 좀 아프고 말까? 매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번에 또 짤순이를 꺼내게 될 것 같다. 완벽하게 편리한 조리도구라는 건 역시 세상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짤순이는 설거지 건조대 위에서 덜 마른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손으로 짜는 과정이 이렇게 정교할 줄은 몰랐네요. 제가 무칠 때는 그냥 면보에 짰는데…
손으로 짜는 방식에 대한 엄마의 집념이 아직도 느껴지네요. 특히 김치 국물 찌꺼기가 망에 박혀 잘 빠지지 않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수영복 물기까지 짜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김치 물기만 짜던 저로서는 그 활용도가 놀랍네요.
오이지 무침을 자주 해 먹으면서 짤순이의 필요성을 다시 느꼈네요. 손으로 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이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