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고기 구워 먹으려다 시작된 일
어느 날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밖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편하게 먹고 치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우리 집에 마땅한 불판이 없었다는 거였다. 예전에 쓰던 건 너무 작고 코팅도 다 벗겨져서 버린 지 오래였고, 그렇다고 새로 사자니 뭘 사야 할지 막막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원형불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가스버너 위에 올리는 것부터 `전기화로`까지 종류가 정말 많더라. 기름 빠지는 구멍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코팅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몇 시간을 뒤적이다가 결국 가스버너 위에 올리는 제일 무난해 보이는 `원형불판` 하나를 골랐다. 스텐으로 된 게 관리하기 편하다는 후기가 많아서 조금 비싸도 그걸로 샀던 것 같다. 한 3만원대였나. 그렇게 불판을 주문하고 나니, 뭔가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기 구울 때 쓸 집게, 뒤집개 같은 것들 말이다.
실리콘이라는 단어에 낚여서
고기 구울 때마다 늘 쓰던 스텐 집게가 불판 코팅을 긁는 게 신경 쓰였던 터라, 이번에는 `실리콘집게`를 찾아봤다. 확실히 스텐만 있는 것보다 실리콘 팁이 있는 게 덜 긁고 소리도 안 나서 좋겠더라.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가, 결국 집에서 제일 가까운 마트에 갔을 때 행사하는 걸로 대충 하나 집어왔다. 집게를 보니까 또 실리콘으로 된 다른 조리도구들도 생각났다. 김치 볶음밥 할 때마다 늘 썼던 플라스틱 뒤집개는 열에 약해서 끝이 자꾸 녹아내리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꽤 튼튼해 보이는 `실리콘볶음주걱`도 하나 같이 샀다. 이 참에 낡은 것들 다 바꾸자는 생각이었다. 집게랑 주걱 합쳐서 한 2만원 좀 안 되게 썼던 것 같다.
확실히 실리콘이 좋긴 좋더라. 특히 `실리콘볶음주걱`은 웍질할 때 소리도 안 나고 팬에 흠집도 안 가서 만족도가 높았다. `실리콘집게`도 괜찮은데, 아주 뜨거운 불판 위에 오래 두면 실리콘 부분이 좀 흐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집게 끝에 고기 기름 같은 게 눌어붙으면 세척이 살짝 번거로웠다. 그래도 코팅을 긁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만족스럽다.
사놓고도 아리송한 것들
원래는 불판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것저것 보다가 `전기화로`까지 사게 됐다. 가스버너에 불판 올리는 것보다 연기도 덜 나고 테이블 위에서 바로 구울 수 있다는 말에 홀린 듯 구매 버튼을 눌렀다. 가격은 8만원대였는데, 막상 써보니 좋긴 한데 좀 무거웠다. 고기 한 번 구워 먹으려고 꺼내고 세팅하고 다시 닦아서 넣는 과정이 생각보다 귀찮았다. 딱히 캠핑을 갈 것도 아니라서 과연 이게 집에 얼마나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마 다음번엔 그냥 팬에 굽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건 고기랑 상관없는 건데, 늘 국물 요리할 때 국자를 아무 데나 내려놓는 게 불편해서 `국자받침대`를 샀다. 냄비 뚜껑도 마땅히 둘 데가 없어서 `냄비뚜껑거치대`도 샀는데, 이것들도 막상 사놓고 보니 자리를 차지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냄비뚜껑거치대`는 뚜껑 크기에 따라 좀 불안정할 때도 있어서, 매번 쓸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놓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럭저럭이다. 차라리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비슷한 걸 살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의외로 편했던 작은 도구들
그래도 몇 가지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매일 물병을 쓰다 보니 좁은 입구를 닦는 게 일이었는데, `컵브러쉬`를 사고 나서부터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 솔이 부드러워서 기스 날 걱정 없이 뽀득뽀득 닦을 수 있었다. 가격도 몇 천원 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거 하나로 설거지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그리고 집에서 반찬 만들거나 고기 재울 때 늘 쓰던 플라스틱 볼들이 찝찝했는데, 이 기회에 `스텐그릇` 몇 개를 사이즈별로 들였다. 깨질 염려 없고 위생적이라서 마음이 편하다. 플라스틱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아서 아주 잘 쓰고 있다. 괜히 진작 안 샀나 싶을 정도다.
결국은 좀 귀찮다는 생각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시작해서, 이것저것 사다 보니 십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주방용품에 썼다. 며칠 동안 택배 기다리고, 박스 뜯고, 정리하고… 막상 다 갖춰놓고 나니 고기 한두 번 구워 먹고 나서는 그냥 좀 귀찮다는 생각만 든다. `원형불판`도, `전기화로`도 처음에는 신났지만 매번 세척하고 보관하는 게 번거롭다. 어쩌면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생각 자체가 조금은 비현실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엔 그냥 식당에 가거나 아니면 정말 간단하게 프라이팬에 구워 먹을까 싶다. 그 많던 조리도구들은 지금 주방 서랍 한 켠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나중에 또 뭐가 필요하다고 느껴질지, 아니면 또 뭐가 불편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실리콘 집게는 정말 잘 챙겨주셨네요. 뜨거운 불판에 오래 두면 변형될 수 있다는 점 짚어주셔서 참고해야겠어요.
전기화로 샀던 거, 저도 비슷한 경험 있는데, 생각보다 사용 빈도가 정말 낮아서 그렇더라고요.
컵브러쉬 덕분에 설거지 진짜 편해졌네요! 저는 특히 음식물 찌꺼기가 잘 묻어나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원형 불판을 사면서 집게랑 뒤집개도 같이 샀어요. 처음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기 굽는 동안 훨씬 편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