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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조리도구들을 싹 다 비워버리고 싶었다

설거지하다가 문득 든 생각

어제 저녁에 된장찌개를 끓이다가 서랍을 열었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인덕션 계란말이 팬은 코팅이 다 벗겨져서 계란이 바닥에 철썩 달라붙고, 구석에는 쓰지도 않는 실리콘 볶음 스푼이 세 개나 꽂혀 있었다. 요즘 뉴스에서 검은색 플라스틱 조리도구에서 유해 물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본 뒤라 그런지, 괜히 서랍 속 잡동사니들을 쳐다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충동적으로 낡은 것들을 죄다 꺼내서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사실 예전에는 이런 거 하나하나 버릴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제는 그냥 주방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잘 들지 않는 가위와 낡은 도마의 결말

도마 세트는 결혼할 때 받은 건데, 나무 도마는 관리가 안 돼서 벌써 중간중간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말리고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요즘은 그냥 도마를 쓸 때마다 이게 위생적인가 싶어 찜찜하기만 했다. 주방 가위도 문제였다. 닭고기나 파를 썰 때마다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뎌져서 새로 빅토리녹스 칼이랑 가위를 살까 고민 중이다. 검색해보니 가격대가 꽤 나가길래 망설여지는데, 주변에서는 한 번 사면 오래 쓴다며 권하더라. 근데 문제는 이런 걸 새로 산다고 해서 내 요리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그냥 내 손에 익은 물건이 최고라는데, 그 손에 익은 물건들이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게 씁쓸하다.

무쇠팬을 길들이려다 포기했던 날

작년인가, 인스타그램에서 무쇠 후라이팬으로 스테이크 굽는 영상을 보고 홀린 듯이 무쇠팬을 샀던 적이 있다. 가격이 거의 10만 원 가까이 했는데, 한 번 쓰고 나니까 시즈닝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기름을 바르고 굽고 다시 닦고, 습기 차지 않게 말려두는 그 과정이 퇴근 후에는 너무 버거웠다. 결국 싱크대 하부장 구석에서 녹이 슬어가고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왜 이런 걸 샀을까’ 싶다. 차라리 그 돈으로 가볍고 잘 닦이는 스텐삽이나 괜찮은 조리도구 세트를 새로 맞추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비싼 무쇠팬을 다시 꺼내서 녹을 닦아낼 용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냥 버리자니 너무 비싸고, 쓰자니 번거롭고 딱 그런 상태다.

비어버린 서랍 공간을 보며 드는 생각

오늘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서랍을 다시 열어봤는데, 확실히 잡동사니를 치우니 공간이 널널해졌다. 근데 막상 뭘 하려고 하니 필요한 도구가 없어서 당황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어제는 파를 썰어야 하는데 가위가 없어서 칼을 꺼내고, 도마를 정리해서 꺼내느라 평소보다 5분은 더 걸린 것 같다. 효율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불편함만 자초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깔끔한 주방을 꿈꾸지만, 사실 요리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자잘한 도구들이 널려 있어야 제맛인 건지도 모르겠다.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다. 가벽을 세워서 깔끔하게 가리면 마음이 편할까 싶지만, 또 그 가벽 뒤에서 엉망으로 섞여 있을 도구들을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섭기도 하다.

아직도 고민 중인 주방의 풍경

퇴근길에 다이소나 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것만 몇 개 새로 사 올까 하다가 그냥 왔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 있는 낡은 도구들을 다 꺼내서 한 번씩 닦아보고, 정말 쓸 것만 남겨보려고 한다. 사실 새로 산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깔끔해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냥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게 살림인 것 같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정말 좋은 도구들로 다시 채워 넣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든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또 찌개를 끓일 텐데, 그때는 서랍이 조금 비어 있는 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조리도구들을 싹 다 비워버리고 싶었다”에 대한 1개의 생각

  1. 파 썰 때 칼 찾느라 시간 낭비하는 거, 저도 완전 공감해요. 제가 생각해보니, 뭘 찾으려고 하는 사이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버리는 경우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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